엄마가 아프다는 걸 듣고 난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원자력병원 외래환자 대기실에 모였다. 지난 번 엄마가 혼자 받았던 검사의 결과를 듣는 날이였다.
처음 엄마와 아빠는 두 사람만 병원에 다녀오겠다는 뜻을 동생과 나에게 밝혔다. 혹시라도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서 엄마가 우리가 있으면 오히려 부담스러워할까봐 알았노라고 했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다. 당일 동생은 마음을 바꿔 엄마, 아빠와 병원으로 이동한다고 연락이 왔다. 휴가를 내지 못한 나는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우연히 통화를 듣게 된 직장 선임은 휴가 못 낸게 대수냐며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11월이지만 날은 왜 이리 좋은지 이렇게 좋은 날 가족끼리 여행을 가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원자력 병원으로 향했다.
처음 방문 한 원자력 병원의 외관은 내가 기대했던 대학병원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좀 더 큰 병원으로 가보는 게 낫지 않았을까? 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외래환자 대기실에 도착하니 엄마와 아빠의 뒷 모습이 보였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여러 환자들 사이에 앉아 있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왜 이렇게 작게 느껴지는지 애써 마음을 추스리고, 부모님 앞에 섰다.
"나도 왔지요. 그래도 우리 집 중전마마가 결과를 듣는 날인데 큰 딸이 빠질 수 없지 않겠습니까." 생각보다 부모님과 동생은 나의 등장을 무척 반겨줬다. 어떻게 왔냐며 휴가는 냈냐며 한 바탕 소란을 부리던 중 간호사는 엄마의 이름을 호명했다. 엄마와 아빠는 손을 잡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옆 자리에 초조한 동생의 모습을 보니 나보다 더 엄마와의 애착도가 큰 저 녀석은 얼마나 이 상황이 힘들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10분쯤 지났을까 부모님이 나오셨다.
"뭐라고 하셔?", 아빠는 "아 그냥 수술하자고, 수술하기로 했어. 수술해야 제대로 안데. 수술하면 되지 뭐. 나 차 빼 가지고 올게." 그리고 황급히 사라져 버렸다.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내가 남겨졌다. 엄마는 "괜찮아. 어짜피 암 인 줄 알았잖아. 그리고 수술할 줄은 알았지. 수술 잘해서 항암치료는 안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다행히 빨리 수술 날짜를 잡아주셨어." 정말 늘 긍정적인 엄마다운 말이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의사는 엄마의 상태가 초기가 아님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본인이 그렇게 많이 아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날의 우리가족은 오랜 만에 평일 낮 시간, 네 식구가 모여서 카페에 앉아 묵혀 둔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다. 어느 때 보다도 서로의 존재에 감사한 날이었고, 그렇게 우리는 엄마가 아프다는 걸 알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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