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칠십 삶 중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꼽으라면 마마걸인 나는 우리 엄마라고 주저없이 이야기 할 것 같다. 우리집 식구가 들으면 섭섭해 하겠지만, 내가 엄마라고 대답할 거라는 걸 그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엄마와 나의 서로를 향한 엄청난 애정은 우리집 식구 뿐 아니라 내 지인들 사이에는 유명하다.
엄마의 고백을 빌리자면 어린시절 나는 유난히 기질이 예민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자기 고집을 가진 아이였다고 한다. 자식이지만 거리두기를 하고 싶었던 나날이 많았고, 그로 인해 다정함 보다는 엄격함을 유지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알 수 없는 거리감과 섭섭함을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청소년기의 엄마와 나의 관계는 애증의 연속이였던 것 같다. 나의 유난함에 엄마는 점을 보러가고, 나를 스님의 양녀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나도 18살 딸을 키워보는건 처음이라 너무 어려워. 너도 처음 살아보는 18살이 쉽지 않겠지, 너의 기대만큼 내가 무언가 해주지 못해 미안해. 그렇지만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라는 엄마의 고백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다.
직장에 들어가서 인생의 쓴 맛을 맛보며 엄마를 다시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고, 엄마의 과거와 현재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의 수고와 인내를 다시 깨닫게 되었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기에 여전히 부족한 딸이였다.
2014년 10월의 어느 날 나는 아빠로부터 백화점 신발 매장에서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엄마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황당했다. 아빠는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어떻게 백화점 신발 매장에서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황당한 아빠의 행동에 화가 났다. "아빠 뭐라는거야? 엄마가 아프다고? 아니그걸 이런 식으로 말해?" 라며 화를 냈지만, 그보다 덜컥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에 두렵고, 서러워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좋은 사람인 우리 엄마한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 난 걸까?,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식습관도 좋은 엄마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걸까?'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날은 너무 이상했다. 이번 주에는 꼭 집에 들리라고 이야기 하던 아빠, 평일 점심 시간인데 휴가를 내고 같이 밥을 먹던 엄마, 회사 갈 구두가 아닌 편안한 신발을 산다면서 백화점으로 가던 엄마, 누군가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상태는 괜찮냐는 전화를 황급히 끊던 엄마, 파견근무를 떠나고 싶다는데 절대 안된다던 아빠, 평소와 다른 두 사람이였지만 엄마가 아프다는 그것도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을 줄이야.
내가 신발 코너 끝에서 울고 있는 걸 본 엄마는 "당신 여기서 얘기했어? 그러면 어떻게 애가 놀라잖아."라고 이야기 했다. 신발을 고르고 나와서 주차장으로 이동하면서 엄마는 평택에서 검진을 받고, 암 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벌써 한달 반 전 쯤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원자력병원에 혼자가서 검사를 받고 나오는 길에 아빠한테 암 검사를 받았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동생에게는 어제 이 사실을 알려줬고 담담하게 받아들여줘서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엄마는 내가 제일 걱정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의 담담한 고백에 알았노라 대답을 하고 엄마, 아빠를 배웅했다.
서울로 다시 올라가는 길에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엄마가 초기가 아니면 나는 어떻하면 좋지?',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지?' 등 생각이 많아졌다. 그 끝에 행사가 많아 집에 내려가서 못한 지난 한달 중 엄마가 자취방에 들려서 반찬을 산더미처럼 놓고 간 날이 기억났다. 그 날 엄마는 혼자 검사를 받으러 올라왔던거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제대로 고맙다고 이야기도 안했던게 미안해 눈물이 났다.
어떤 시간이 우리 모녀에게 펼쳐질 줄 몰랐고, 갑작스러웠지만 그렇게 엄마의 투병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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