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야기

나로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

뭉치2020 2020. 6. 18. 00:43

어릴 적 부터 늘 내 머릿 속에 머무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나는 도대체 왜 태어났을까? 나는 어떻게 살면 될까?

 

고등학교 시절 나는 꽤나 이 질문에 답을 얻지 못해 고통스러웠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명확한 정의와 가이드를 얻고 살아가고 싶은데, 내가 누구인지, 어느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 할 수록 혼란스럽기만 했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에게 그 답을 얻고 싶었지만, 나도 알지 못하는 나의 장점들을 이야기 해주면서 나중에 그 장점들이 빛을 바랄려면 지금은 공부할 때라는 답변만 반복해서 들었다.

 

그 무렵 나의 인생 롤모델은 강타오빠였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인기로 가득한 그들의 삶

너무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나만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고, 유일한 그들의 지지자로서 내 삶을 살아내도 좋겠다는 환상을 가졌던 것 같다.

 

나의 삶의 공허함과 무방향성이 낳은 빠순이로의 삶, 내가 기억하는 첫번째 중독이다.

'오빠의 모든 것을 나는 이해하고, 오빠의 영원한 팬으로 살아야겠다.'가 나의 삶의 축이였다. 이 중독은 대학교 입학 후 동아리 가입과 동시에 막을 내렸다.

 

대학에 들어가니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인가?'라는 생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기준에는 외향적인 조건이 그렇게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에 와보니 나보다 똑똑하고, 예쁘고, 이성에게 인기 많은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열등감의 시작이었다. 열등감이 시작되니 나라는 존재에 궁금증 마저도 없어지고, 누군가가 부르면 그 자리에는 늘 함께 해야만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안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봉사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다.내가 기억하는 두번째 중독의 시작이였다.


봉사동아리 안에서 적어도 내 기준에 나는 적당히 예뻤고, 성격도 원만하다고 내 스스로를 포지셔닝 했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핵인싸가 되었다.

 

그 뿐 아니라 매주 방문하는 시설에서 멘티들과 시설선생님들로 부터의 피드백은 더 할 나위 없이 성실하며, 봉사정신이 투철한 퍽 나보다 남을 위한 삶을 사는 나로 나 자신을 인식하게 만들었다.(아니 사실 그렇게 인식되고 싶었던 것 같다)

 

대학교 2학년 끝, 동아리 활동의 짱을 뽑는 시간이 되었다. 누군가 나를 짱으로 추천했지만 내가 짱이 될 자신도, 또 모두가 나를 뽑을까라는 두려움이 생겼었다.

대안이 필요했고, 나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나는 돈도 벌고, 어학도 챙겨서 돌아오리, 나는 보여주리 덕분에 나의 두번째 중독이 끝날 수 있었다.

 

호주에서는 누구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것들을 조금씩 해 볼 수 있었다.

금전적으로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틀에 메이지 않는 삶을 사니 오히려 마음이 참 편안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나는 세번째 중독을 맞이하게 되었다. 종교중독

 

다시 한국인들을 만나고, 그 안에서 하나님,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삶에 대해 들을 수록 내가 태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왜 인지도 정확히 정의하지 못한 채)

짧은 시간 세례를 받고, 모든 예배에 참석하며, 노방전도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호주에서의 마지막 2달 간은 말레이시아 단기선교 준비로 마무리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지만 그 때 만났던 하나님, 예수님은 없었고 딱딱한 예배와 친해지지 않는 청년부 안에서 외로웠고 곧 종교중독도 끝을 맺게 되었다.

 

종교중독의 끝에 나는 하나님이 주신 나만의 비전이라 믿었던 꿈의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대학교 3학년부터 꾸준히 스펙 관리를 하면서 열심과 열정으로 그 꿈의 직장에 취직을 원했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며, 나는 그 직장에 취직하게 되었고 주의 부르심이라는 생각으로 죽기까지 그 직장에 헌신하기를 작정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네번째 중독 일중독에 빠져 들게 되었다.

 

29살이 되면서, 홀로 떠났던 여행에서 내가 자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 하나 선택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퍽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 때, 나는 내 자신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늘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면서 난 정말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없었다. 충격이였다.

 

그 경험 이후 나의 중독을 끊어내고자 나는 그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이후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향과 가치를 쫓아 2번의 이직을 더 하게 되었다.

 

2번의 이직의 끝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첫번째 직장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는 걸 나는 여전히 29살의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일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업무시간과 양을 줄이는 결단을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면서


나는 내가 중독에서 벗어난 줄 알았다.

 

그러던 오늘 정면으로 일중독의 실체와 마주했다.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업무에 피드백을 들으면서, 감당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이 회사에서 일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처음으로 당장 그만둬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스스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본 배우자는

'30분 기도를 해보면 좋겠어.'라는 권유를 했다. 아니 내가 죽겠다는데 기도는 무슨 그랬지만, 정말 감당할 수 없는 분노 앞에 다른 방법이 없어보였다.

 

처음에는 분노의 감정을 쏟아냈고, 주기도문으로 울부짖고, 무기력함과 내가 받은 상처들을 모두 쏟아냈다.

그러던 중 '나는 왜 이 일에 있어서, 직장 안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어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랬다. 나는 인정 받는 주인공이여야 했다. 늘 어느 곳에서나

 

이 직장 안에서도 인정 받는 주인공이여야 했다. 이 일은 곧 나이고, 내가 일이기에 내가 모르는 일은 있어서도 안되고, 빠지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이 일이 잘되게 만들어야만 했다. 내 경험이 중요했고, 나의 의견 외에는 사실 귀담아 듣고 있지 않은 내 모습이 보였다.

 

일중독이라는 것이 단순히 업무에 몰입된 것이 아니라 내가 곧 업무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기에 끊임없이 몰입하고 살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늘 허덕이면서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나로 살아보기로 늘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고 싶었는데, 엉뚱한 곳에서 늘 주인공으로 살면서 인정을 기대해왔던 것 같다. 나의 삶의 무대에서 주인공이자, 유일한 청중으로 살아가고자 결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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