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집 식구로 부터 "나는 널 닮은 딸을 꼭 낳고 싶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워낙 달콤함,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우리 집 식구의 고백에 의아했다. 매일 눈이 작은 내가 아닌 자신을 닮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우리 집 식구의 느닷없는 한마디에 뾰족하게 반응했다. "왜?"(아빠 닮았으면 예뻤을텐데 엄마 닮아서 안타깝다고 하려고?) 남편은 내 반응에 "어릴 적 네 모습을 내가 본 적이 없으니, 아기 때 너, 초등학생 때 너, 내가 없던 시간 속에 널 보고 싶어."라는 답했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거 같이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나는 타고난 기질이 예민한 아이였다고 했다. 눕혀도 안아도 너무 많이 울고, 모유를 물려도 잘 먹지 않고, 분유를 먹이면 다 토하내기 일 수 였다고 한다. 조금 커서는 감정적으로 너무 예민해서, 무슨 일만 생기면 삐지고, 떼쓰고, 울어대서 늘 양육하기에 어려운 아이였다고 했다. 어린시절 내 별명이 뺀질이, 벼락대신 이였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내가 다루기 힘들었으면 식구들이 그렇게 불렀을까 생각해본다.
그 시절 내 마음 안에는 나는 못된 아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집 안에서는 뺀질이, 학교에서는 부적응아였다. 어린이집, 유치원은 다닌 적이 없었고, 또래와 같이 놀던 경험이 없던 나는 학교에 많은 아이들이 너무 낯설었다. 학교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곳에 살아서 등하교길은 늘 할머니와 동행해서 친구를 사귀기는 더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퍽 외로웠던 것 같다.
그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적극성을 가지고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살피고, 그걸 채워주면서 관계를 만들어 나갔다. 어느 순간 누구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되었고, 늘 주변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주변의 사람이 많아질수록 나배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난 아무거나 다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데로 하자."가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의견을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누군가가 나의 의견으로 인해서 불편해질까봐 두려웠다. 그 두려움을 견디느니, 선호나 생각을 밝히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늘 사람에 둘러 쌓여있었지만, 어느 순간 나는 없고 주변만, 상황만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어디서부터 나를 찾아야 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가끔씩 질문을 던지지만 '내가 누구인지?', '내가 가진 생각은 뭐지?' 물어보다가도 익숙하지 않기에 생각을 멈춘다. 그리고 다시 주변의 말과 반응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
불안함에 늘 긴장하게 되고, 갈등 상황 앞에서는 어떻게 이를 해결할 지 전전긍긍하게 된다. 최근 이런 나의 모습에 가장 힘든 건 나와 내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족들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로 사는 내가 얼마나 불안해보일까?
남편이 "너를 닮은 딸을 낳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났던 건, 내 삶의 구석구석에 찾아와서 나를 소중히 여겨주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나에게 돌아가서 위로를 건네고 싶다. "표현방법이 서툴었을 뿐이지, 너는 특별한 감성을 소유한 소중한 존재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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