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동유럽 절반 패키지를 떠나게 된 시점은 3번째 수술을 한 후 8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전체 일정은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체코 4국을 9일에 걸쳐 다녀오는 패키지였다. 엄마 두 사람 모두에게 유럽은 처음인지라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너무 빠른 게 아니냐는 의견도 많았지만 모녀는 용감했다. 만약을 위해 투어 일정 시 가이드에게 방문할 수 있는 병원 정보를 요청했고, 항공 예약과 항공 대기 중의 계획도 꼼꼼히 챙겼다. 사전에 복용해야 하는 약과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넉넉히 준비했다. 더불어 여행지 별로 모녀 커플룩 연출을 위한 쇼핑과 젤 네일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암 환자 기내식 사전 신청
여행을 가는 당일이 되니 긴 비행시간을 엄마가 버텨줄지 걱정이 많이 되었다. 첫 행선지는 오스트리아로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일정이었다. 이스탄불 공항까지 가는 중 기내식은 엄마에게 맞는 해산물과 야채 위주의 식사로 좌석 배정 시 선택해두었고, 큰 무리 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스탄불 공항에서는 라운지 이용을 생각했지만 시간과 비용을 고려,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카페를 찾아 음료를 마시고 면세점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경유 시간이 길다면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Day 1. 오스트리아 비엔나
드디어 비엔나에 도착했다. 사전에 검색했던 일기 예보처럼 비엔나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짐을 찾고 전용버스로 이동 후에 패키지 투어에 참여 한 인원 한 사람, 한 사람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보는 유럽의 길거리 풍경에 엄마는 감탄을 쏟아냈다. 첫 방문지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이었던 쉔부른 궁전 내부를 관람하고 정원을 투어하는 시간을 가졌다. 노란 우비를 입은 엄마는 꼭 병아리 같았다. 엄마의 예쁜 모습을 남겨 주고 싶어서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며 이곳저곳을 누볐다. 왕궁의 내부의 양식들도 인상적이었지만 정원의 규모가 상당했다. 자유여행을 다녀왔다면 이곳에서 하루의 반을 보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쉔부른 궁전 투어 이후 투어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시청사와 호프부르크 왕궁 외관을 지나쳤다. 어느 덧 게른트너 거리에 도착했고,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점심 메뉴는 호이리게였다. 가이드분의 설명에 따르면 그 해 수확한 포도주를 마실 때 같이 먹는 오스트리아의 전통 음식이라고 했다. 돌아와서 다시 호이리게에 대해 검색해보니 그 해에 생산된 포도주 또는 포도주를 파는 선술집을 호이리게라고 일컫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체 관광이다 보니 한 테이블에 4명이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고, 음료는 원하 는데로 주문할 수 있었다. 그 해에 생산된 포도주랑 먹는 음식이라는 말에 와인도 한잔 주문해보았다. 다행히 모든 재료가 엄마가 먹을 수 있어 맘 편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게른트너 거리
식사를 마치고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자유롭게 게른트너 거리를 돌아보다 약속된 장소에 모여서 이동하는 것을 안내받고 엄마와 재빠르게 거리로 나왔다. 쇼핑하기에 최적화된 쇼핑센터를 한 곳 둘러보고 나니 흥미를 잃었다. 쇼핑센터 안은 한국의 여느 쇼핑센터와 다르지 않았기에 우리는 거리의 모습을 즐겨보기로 했다. 골목으로 이동해서 거리를 돌아보니 한적한 느낌으로 거리 게른트너 거리의 곳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길을 가다 멈춰서 찍는 사진마다 인생 샷이 되는 느낌이었다.
거리를 한참 둘러보고 성 스테판 성당이 가장 잘 보이는 SKY 카페로 이동하여 멜랑쥐를 주문했다. 카페 창 넘어 풍경을 보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정말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마시며 찍은 사진을 돌려보는데 유난히 나를 찍어 준 엄마의 사진은 모조리 흔들려 있었다. 나도 모르게 "엄마는 내 사진 찍지 마. 내가 엄마 사진만 찍어줄게." 당시에는 엄마가 카메라 초점을 맞추는 방법을 잘 모르고 사진을 찍어 모든 사진이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기운이 없어 손이 흔들렸던 것 같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는 내 사진 찍지 말라고 이야기하니 눈물을 글썽이며 "나도 딸 예쁜 모습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서 찍는 거야. 나는 흔들려도 예뻐. 너한테 안 보낼 거니까 찍지 말라고 하지마."라는 엄마의 말에 미안해졌다.
성 슈테판 성당
커피를 마시고 내려와 비엔나의 상징이라는 성 슈테판 성당 앞에 섰다. 그 규모 앞에 압도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오스트리아 최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고 첨탑의 높이가 137m이고, 지붕 타일 장식이 23만 개가 들어갔다니 놀라웠다. 이 성당은 1145년 건축을 시작했고 화재로 소실된 것을 1359년부터 65년간 공사를 진행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건물이라 공사를 진행하고 벽면이 검게 변해서 이를 긁어내는 공사를 진행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내부까지는 시간 상 관람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자유시간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이동시간이 길어 관광할 수 있는 시간이 적은게 무척 아쉬웠지만 이 정도 일정이 엄마에게는 적당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3시간 반을 달려 우리는 슬로베니아 마리보르에 도착했다. 좁은 마을 길을 지나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 덧 밤이었다. 호텔에서 부페식으로 식사를 하고 엄마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Day 2. 슬로베니아에서 크로아티아로
이른 아침 호텔 조식을 먹고 자그레브로 이동하기 위해 관광버스에 탑승했다. 가이드는 엄마와 나에게 힘이 들면 차 안에서 쉬고 일정을 건너 뛰어도 무방하니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해줬다. 편안한 마음으로 2일차 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자그레브로 이동하는 중 도로에 내려서 크로아티아 입국 신고를 진행했다.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여 자그레브에 도착했다. 옐라치치 광장을 지나 자그레브 대성당을 둘러보았다. 어제 본 성 스테판 성당은 규모에 압도당했다면, 자그레브 대성당 앞에서는 경건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성 마르크 성당
자그레브 대성당을 지나 독특한 모자이크 문양이 인상적인 성 마르크 성당으로 이동했다. 크로아티아 하면 떠오르는 곳 중 한곳이 지금 여기라니 엄마와 함께 열심히 사진을 찍어보았다. 성 마르크 성당을 지나 돌라체 시장으로 내려와 과일을 구매했다. 어느 지역에 가도 시장 구경을 좋아하는 엄마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요즘 여행지마다 시장을 돌아보니 날 보니 그 지역의 정취를 느끼기에 시장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오전 자그레브 일정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이번에는 스플릿으로 5시간 정도 관광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2번 정도 중간 휴게소에 들리고, 휴게소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보이는 풍경들이 너무 아름다웠고, 엄마와 나누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엄마는 나를 위해 애쓰느라 딸인 내가 누릴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했다. 늘 짐을 혼자 챙기고, 들고, 먹을 때도 잘 때도 엄마를 돌보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과하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기도 하고, 내가 안쓰럽기도 하다고 했다. 엄마의 마음이 다는 아니지만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 했다. 암이라는 병과 싸우고 있지만 그 또한 삶의 한 과정임을 인정하는 엄마가 대단해보였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 스플리트
번외 1편에도 작성했듯이 엄마와 내가 가장 기대했던 여행 코스는 플리트비체와 프라하였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나서 가장 좋았던 곳을 생각해 보면 스플리트였다. 스플리트에 도착 한 시간은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느즈막이 도착한 그곳에서 가장 먼저 디오클레시안 궁전을 방문했다. 디오클레시안 궁전, 그레고리우스 닌 동상, 리바 거리를 돌아봤다. 오후의 따뜻한 햇살과 적당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리바 거리를 걸을 수 있어 무척 행복했다. 낯선 곳에서의 자유로움을 엄마와 한껏 맞보며 이 시간을 누렸다.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유난히 좋아하는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더욱 행복감을 느끼는 듯했다. 5시간 정도 차로 이동하면서 느낀 피로감이 모두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스플리트를 여행지로 정하고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플리트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버스를 타고 다시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내일의 두브로브니크 일정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Day 3. 두브로브니크 성벽길 투어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휴양도시 두브로브니크로 3시간 30분이 걸려 이동했다. 어제까지는 약간 쌀쌀한 느낌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햇살이 뜨겁지 않았음에도 더위가 느껴졌다. 3일차에는두브로브니크 스르지산 전망대, 성벽 투어, 유람선 선택관광이 포함되어 있었다. 엄마와 나는 모든 관광을 선택했다. 구시가지에 입장해서 성벽 투어에 먼저 참여했다. 성벽 투어를 하면서 보는 시가지 안의 모습이 너무나 평온했다.
유람선 투어가 마지막 일정일 줄이야.
유람선이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빠한테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딸 외할머니가 위독하시다. 얼른 돌아와야겠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우리 엄마 어떡하지? 엄마가 집까지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외할머니가 그때까지 살아계셔야 할 텐데.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가이드에게 가장 빠르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문의했다. 다행히 드부로브니크 공항이 이곳에서 멀지 않고 택시로 이동할 수 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 지인을 통해 드부로브니크 공항에서 한국으로 오는 가장 빠른 항공편을 확인했고 예약을 진행했다. 항공편 시간을 전달했고 그 시간에 맞춰 짐을 전달받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후에 선택관광비로 지불했던 모든 비용은 점심시간에 환불 받았다. 남은 일은 엄마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세상 해 맑게 아드리아해가 너무 아름답다는 엄마,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와중에도 나는 엄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스르지산 전망대 투어 취소
점심을 먹는데 엄마의 안색이 급격히 좋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걸었고 지금까지 피로가 누적되어 보였다. "엄마 우리 스르지산 전망대 투어는 취소하고 카페 가서 좀 쉬면서 시간 보낼까?" 엄마는 힘이 들었는지 그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구시가지를 좀 더 걸어 다니다 바닷가 인근 카페에 앉아 엄마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 이번 여행은 여기서 멈춰야 할거 같아." 엄마는 내가 엄마의 건강을 염려해서라고 생각했는지 나 정말 괜찮다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엄마 그게 아니라 외할머니가 위독하시데 그래서 우리는 지금 돌아가야 할 거 같아. 짐은 30분 후에 받기로 했고 엄마는 여기 있어. 내가 짐을 받고 엄마를 챙기러 올게. 비행기는 이미 예약했고 공항으로 가서 지금부터 3시간 후 탑승하면 한국으로 갈 수 있어." 엄마는 엄마를 외치며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을 운 엄마를 챙겨 급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회복한 외할머니
우리가 한국에 도착하니 외할머니는 심정지가 2번 왔지만 안정을 찾고 중환자실에 누워계셨다. 두브로브니크 공항에서 한국까지 오는 과정은 정말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엄마와 나의 동유럽 여행은 이렇게 끝났고, 종종 그때 연락한 아빠를 원망하고 있다. 최근에는 빠른 대처를 보인 날 원망하는 엄마를 보며 또 웃는다.
유럽 여행 이후 엄마와 필리핀, 제주도 여행을 단둘이 다녀왔다. 늘 엄마의 컨디션은 최고인 듯 하나 급격히 지치는 모습을 보이기에 여행을 준비할 때 꼼꼼한 준비와 여유 있는 일정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느끼는 여유와 행복이 있기에 늘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게 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항암 치료 중에도 회복기에는 엄마는 늘 여행을 다녀왔다. 암 환자들에게 환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을 제한하기보다는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과하지 않게 돕고, 함께 누리는 것이 가족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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